인지심리학: 점화 효과(Priming effect)
점화 효과란 새롭거나 낯선 정보의 해석에 영향을 주는 사전 맥락의 효과를 말하는 것으로, 프라이밍 효과라고도 합니다.
이는 인간은 어떤 자극이나 정보에 의해서 특정한 개념을 떠올리면 그 후 접한 정보가 앞선 정보와 별로 관련이 없을지라도 연관 지어서 해석하는 현상입니다.
점화 효과의 예시가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에게 'SO_P'에서 빈칸을 채워 볼 것을 지시합니다.
그 피실험자가 최근에 '먹다'라는 단어를 생각했거나 들었거나 혹은 봤다면 'SOUP(수프)'라는 단어로 빈칸을 채울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습니다.
반면에, 방금 씻고 나온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SOAP(비누)'를 떠올렸을 겁니다.
원인이 뭘까?
점화 효과가 발생하는 원인은 인간의 효율성 때문입니다. 주먹구구식 사고라고 하나요? 우리는 애매모호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그 정보를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와 연관 지어 범주화하고 비교하게 됩니다. 마치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꽂이에 새 책을 꽂을 때처럼 말이죠.
이러한 반응은 애써 인식하지 않아도 일어나는데, 어떠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촉발하면서 연상 활성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무의식적 연상 활성화는 끝말잇기처럼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먹다'라는 정보가 있으면, 음식 관련 정보에 더 주의를 집중하게 되고 '다이어트', '배고픔', '과자' 등 음식과 관련된 수많은 단어가 떠오르게 되는 거죠.
재미있는 실험: 존 버그(John Bargh)의 실험
점화 효과는 비단 단어나 개념에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인간이 인지하지 못한 정보가 특정한 감정이나 행동까지 촉발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존 바그(John Bargh)의 실험은 이에 대해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합니다. 그는 뉴욕대학교의 18세에서 22세 사이의 학생들에게 다섯 개의 단어가 섞인 문장을 주고, 단어 네 개를 선별하여 문장을 완성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때 다른 한 집단에게는 '대머리', '주름', '회색', '깜빡이다', '플로리다'처럼 노인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을 문장 중 절반에 섞어 제시했습니다. 이는 한 집단은 문장을 완성할 때 노인과 관련되는 단어에 노출되지 않고, 다른 집단은 노인과 관련된 단어에 노출된다는 차이를 설정한 것입니다.
문장을 완성한 후 연구원들은 학생들에게 복도 끝에 있는 다른 실험실로 갈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복도 끝 실험실까지 걸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했는데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존 바그의 예상대로 노인을 연상시키는 단어로 문장을 완성한 학생들이 훨씬 느린 걸음으로 이동했다는 겁니다.
노인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접한 학생들은 '노인'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무의식적으로 노인에 대한 생각을 점화했습니다. 또한 노인에 대한 생각은 학생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서 노인처럼 느리게 걷도록 만들었습니다. 실험 학생들은 자신들이 '노인'이라는 개념을 점화했고, 이 때문에 느리게 걸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 처럼, 무의식적인 생각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점화 효과는 '관념 운동 효과(ideomotor effect)'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행동이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독일의 어느 대학이 존 바그(Jonh Bargh)의 실험을 거꾸로 실시하여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관념운동 효과는 행동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역방향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실험에서는 학생들에게 분 당 30걸음을 걷는 정도의 속도로 5분간 실험실을 걸어 다니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걷는 속도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 후 학생들은 문장 만들기를 했는데 '외롭다', '늙다, ' 등 노인과 관련된 단어를 다른 단어와 비교해서 더 빨리 알아보았습니다. 즉, 노인처럼 천천히 행동했기 때문에 노인과 관련된 단어를 빨리 인식한 것입니다.
점화 효과의 사례 1: 사무실 주방 실험
점화 효과는 삶 전반에 걸쳐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듯합니다.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인간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무의식이 생각을 넘어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꽤나 당혹스럽고 불쾌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 점화 효과의 원리를 이용해서 인간의 이기심을 억제한 사례가 있습니다. 영국의 어느 대학교 사무실 주방에서 실시한 실험입니다. 사무원들은 차나 커피를 마실 때 소위 '양심 상자'라는 곳에 양심만큼 돈을 넣고 음료를 마셨습니다. 벽에 권장 가격표는 붙어 있었지만요.
권장 가격표 위에는 항상 그림을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10주 동안 그림을 감시하는 듯한 눈 그림 또는 예쁜 꽃 그림으로 매주 바꿨는데, 재밌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림 이외에 어떤 경고나 문구가 없었음에도 지켜보는 눈 그림을 부착해둔 주에 모인 금액이 예쁜 꽃 그림을 부착해둔 주와 비교하여 3배가량 큰 금액이 모였습니다. 즉, 단순한 그림만으로도 사람들의 행동이 개선된 겁니다.
점화 효과의 사례 2: 바이럴 마케팅
바이럴 마케팅이란 바이러스가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현상처럼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제품의 홍보가 끊임없이 지속되도록 하는 마케팅 기법을 말합니다. 본래의 바이럴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기업을 홍보하는 행위가 본질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바이럴 마케팅은 여러 SNS 매체에서 은연중에 특정 제품을 노출시키거나, 정보전달 글처럼 꾸며 제품을 홍보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바이럴 마케팅 또한 소비자들에게 점화 효과를 촉발시키기 위함입니다. 여러 차례 노출시켜 구매 행위를 하도록 하거나, 긍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의도하는 거죠.
현명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항상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겠습니다. 무언가 사고 싶다는 감정이 강렬하게 느껴지더라도 자신의 자율적인 판단이 아니라 정교한 마케팅 기법에 의한 감정일 수도 있으니까요.
마치며.
앞서 점화 효과를 얘기하면서 점화 효과는 역으로도 발생한다는 설명을 했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서 웃는 걸까 아니면 웃어서 행복한 걸까요?
닭과 계란처럼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 많이 웃는다면 점화 효과에 의해 분명 행복해질 겁니다.
코로나가 오랜 기간 쉽사리 해결되지 않으면서 다들 많이 지쳐있는 듯합니다.
저 또한 감정적으로 많이 지친 듯한데, 오늘 공부한 내용을 상기하면서 마스크 밑으로 몰래 자주 웃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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